[역사]최초 전통차 브랜드의 탄생

  


  다산가에 차를 보내는 다신계의 약속은 이한영(李漢永, 1868-1956)에 의해 지속되었다. 이한영은 집안에 전해지는 다산의 제다법 대로 1창만을 따 모아 낮은 불에 덖어 잎차를 만들었다. 포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얇게 저민 대나무로 프레임을 만들고, 정성들여 포장한 뒤 ‘금릉월산차’ 상표인을 찍어 고급화하였다. 그러다가 금릉월산차 상표인을 분실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이에이리 가즈오와 모로오카 다모스가 공정한 『朝鮮の茶と禪』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이리 가즈오는 1939년 2월 25일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이한영을 방문한다. 이한영이 금릉월산차에 대하여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옥판차의 주인은 이한영 노인(71세)이다. 조선어밖에 말할 수 없으므로, 윤선생의 통역으로 온 뜻을 알리고, 병중의 면회를 사례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노인이 만들고 있는 이외에 「금릉월산차」라고 하는 목판이 옛날에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영암군 미암면 봉황리의 이낙림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갔다. 아마도 그 집을 찾는다면 있을 것이 틀림없다. (노인은 이 월산차를 바꾸어 이름붙인 것으로서, 그 시기는 백 년 전으로 말하고 있는 점이 조금 이야기가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



 이한영은 본래 금릉월산차를 만들어오다가 금릉월산차 상표인을 영암의 이낙림이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자 백운옥판차를 새로이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에이리 가즈오는 월산차가 만들어진 시기가 100년 전이라고 한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다신계의 약속이 다산의 막내제자 이시헌에 의해 지속적으로 지켜지고, 이는 집안에 전승되어 100년 이상 지켜져 온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한영은 ‘백운옥판차’란 상표를 사용하기 전에는 ‘금릉월산차’란 상표를 사용하였다. 이 상표를 찍는 목판을 영암에 사는 이낙림(李落林)이 가지고 가버려 ‘백운옥판차’라는 새 목판을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즉 ‘금릉월산차’와 ‘백운옥판차’는 상표만 다를 뿐, 같은 제다방법으로 만들어진 한 가지의 차이다.



 또한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본 금릉월산차의 포장 크기(세로 5촌(15cm), 가로 2촌(6cm))와 이에이리 가쯔오가 본 백운옥판차의 포장틀 크기(세로 5.2촌(15.6cm), 가로 2촌(6cm))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볼 때, 이한영은 상표만 ‘백운옥판차’로 바꾸었을 뿐 제다법과 포장방법은 그대로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