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인정많은 지혜로운 고을 ‘금릉’
다산 정약용 ‘필생의 고갱이’ 집약처
여름 석달 하늘·보라 다색의 수국 천지
202년간 ‘다신계’ 이어가는 백운옥판차
‘한국의 다빈치’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은 필생의 고갱이가 집약된 곳이다. ‘빛나는 언덕’이라는 뜻의 금릉(金陵=강진)은 다산을 넉넉하게 품고 그의 지혜를 따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산이 자유를 누리며 백성과 나라를 위한 책 500여권을 쏟아낼 수 있는 붉고 푸른 멍석을 깔았다.
월출산과 강진만의 건강 생태, 다산의 지혜를 고스란히 입은 금릉 사람들은 ‘밥상을 약상처럼’ 과학과 인정 담은 음식 문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강진 나이트 드림’, 창작발전소 ‘오감통’ 같은 예술적 끼를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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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산방 수국길. |
▶천혜·지혜·인정, 원래 이름 금릉 어때?=품격 있는 힐링, 과학 품은 건강의 도시 강진에 대해 유홍준 석좌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머리 54쪽이나 할애해 강진을 ‘편애 중계’했다. 조선군제 재편과정에서 기계적 작명으로 도강+탐진이 강진 됐고, 어감이 억센데, 사실 아름답고 인정많으며 지혜로운 고을이다. ‘금릉’이라는 고유지명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들린다.
여름 석달 내내 강진은 수국 천지다. 변화무쌍한 식생의 이곳에서 수국은 뿌리 디딘 곳 토양에 따라 하늘색, 보라, 연두, 분홍, 베이지색, 다색조화형 등 다양하게 피어난다. ‘진심’이라는 꽃말처럼, 수국 같은 이야기가 남도여행 1번지 강진을 감싼다.
월악산 남쪽 전남 최대 사찰 월남사가 있던 터 앞에는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이 직영하는 ‘백운옥판차 이야기’라는 찻집이 있다. 차 문화는 사찰과 그 주변에서 발달해왔다. 이 찻집 역시 앞마당과 울타리 밑에 수국이 가득하고, 한담(閑談)을 부르는 초가 정자가 편안하게 서있다. 이 모습을 월출산이 흐뭇하게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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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밭에서 야생차를 채취하고 있는 이현정 박사. |
▶2020년 202주년 사제 의리=이 찻집은 강진의 힐링과 과학의 집약체다. 주인은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7대손 이현정(48) 박사. 이시헌은 월출산 자락 국가 명승 ‘백운동 원림’의 동주(洞主)이기도 했다. 이시헌의 후손이자 이현정의 고조(高祖)인 이한영은 증조부터 자신까지 경기도 정약용 가(家)에 113년간 보내던 차(茶)를 ‘백운옥판차’라는 이름의 건강차 국산 상표로 반포했다.
2020년은 다산이 강진을 떠날 때 사제간 다신계(차를 통한 신의)를 맺은 지 202년 되는 해이다. 학문 성취도에 대한 편지와 시문, 엽차과 떡차를 번들로 보내기로 한 맹약이다. 소포를 받은 다산은 시헌에게 3증3쇄(세번 찌고 말리기)법, 학업에 대한 충고의 답장을 보냈다. 당대의 사제는 이승을 떠났어도 다산과 시헌의 후손는 200년 넘게 ‘백운옥판차(백운동에서 옥판봉을 보며 나누던 차)’ 우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백운동 원림 별서정원은 사제가 운명적 조우를 한 곳이다.
다산의 스승이자 제자이고, 아우이면서 친구, 후견인인 혜장선사(백련사)가 ‘제다(製茶)의 달인’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사를 만든다. 다산은 처음엔 혜장이 월악산 야생 찻잎으로 만든 차를 선물로 받았는데, 나중엔 “요즘 술이 안깬다, 사람을 살리라”는 호소와 “선사님 차가 대박!”이라는 내용의 시 ‘걸명소(乞茗疏)’까지 보내면서 응석하듯 차를 구하고 걸한다. 정약용의 호는 차나무 산(茶山)이다.
응석의 약발이 다할 무렵, 배움을 택한다. 시헌은 제다지침서 ‘동다기’를 베껴써가며 통달해 시사점을 공유했으며, 다산은 대나무 이슬을 맞고 자란 야생 차나무가 더 구수하고 부드럽다는 점 등을 밝혀내고 한의학의 구증구포법을 원용한 새 제다법을 개발한다.
▶백운동의 어린 시헌, 다 계획이 있었구나= 찻집에서 백운동 가는 1.4㎞길은 33만㎡(약 10만평) 드넓은 강진 차밭 사잇길로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 월출산 기암괴석 능선이 호위하고, 푸른 차나무가 사단별로 종대를 이뤄 연쇄적으로 도열하니 장관이다. 군데군데 연대장처럼 어린 찻잎을 냉기와 서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서있는 바람개비(방상팬)가 멋진 소품이 된다. 멀리 남쪽으로 한옥식과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진 마을이 착상해 스위스 농촌 부럽지 않은 풍경을 연출한다.
백운동 입구 구름다리를 건너면, ‘야생’ 차 나무가 동백과 섞여 자라나고, 잠시 후, 백운동의 거대한 녹음 터널이 홍옥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홍옥폭’과 어우러진 별서정원 입구를 만난다. 푸른 빛 바위절벽 ‘창하벽’ 옆 서쪽 문으로 들어서면 자연 옥수가 정원안에 들어왔다 되돌아가 가는 유상구곡이 앞마당을 휘감고, 동쪽 문옆 왕대나무숲 ‘운당원’에서 산들바람이 건듯건듯 불어온다,
1812년 9월, 다산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당시 여덟살이던 시헌은 다 계획이 있었다. 예복을 정제하고, 초등학교 2학년 나이 답지 않게 말투를 고쳐가며 면접보듯, 다산을 대했다. 다산으로선 숨겨진 보석관광지에 놀라움이 더 컸겠지만, 이시헌은 이때 다산의 가장 어린, 그러나 준비된 제자가 되고, 200여년 대대로 이어가는 가장 오랜 제자로 남는다.
이시헌의 증손 이한영은 일제때 우리 차인데 일본 상표가 붙자,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무늬를 넣은 우리 상표 ‘백운옥판차’를 낸 것이다. 이현정 박사는 사라지거나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금릉월산차’를 집요한 연구와 투쟁으로 부활시켰다. 수국의 꽃말처럼, 202년의 진심 담긴 사제지정을 털어놓던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엔 결기가 들어있었다.
아름답고 인정많은 지혜로운 고을 ‘금릉’
다산 정약용 ‘필생의 고갱이’ 집약처
여름 석달 하늘·보라 다색의 수국 천지
202년간 ‘다신계’ 이어가는 백운옥판차
‘한국의 다빈치’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은 필생의 고갱이가 집약된 곳이다. ‘빛나는 언덕’이라는 뜻의 금릉(金陵=강진)은 다산을 넉넉하게 품고 그의 지혜를 따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산이 자유를 누리며 백성과 나라를 위한 책 500여권을 쏟아낼 수 있는 붉고 푸른 멍석을 깔았다.
월출산과 강진만의 건강 생태, 다산의 지혜를 고스란히 입은 금릉 사람들은 ‘밥상을 약상처럼’ 과학과 인정 담은 음식 문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강진 나이트 드림’, 창작발전소 ‘오감통’ 같은 예술적 끼를 발휘하고 있었다.
▶천혜·지혜·인정, 원래 이름 금릉 어때?=품격 있는 힐링, 과학 품은 건강의 도시 강진에 대해 유홍준 석좌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머리 54쪽이나 할애해 강진을 ‘편애 중계’했다. 조선군제 재편과정에서 기계적 작명으로 도강+탐진이 강진 됐고, 어감이 억센데, 사실 아름답고 인정많으며 지혜로운 고을이다. ‘금릉’이라는 고유지명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들린다.
여름 석달 내내 강진은 수국 천지다. 변화무쌍한 식생의 이곳에서 수국은 뿌리 디딘 곳 토양에 따라 하늘색, 보라, 연두, 분홍, 베이지색, 다색조화형 등 다양하게 피어난다. ‘진심’이라는 꽃말처럼, 수국 같은 이야기가 남도여행 1번지 강진을 감싼다.
월악산 남쪽 전남 최대 사찰 월남사가 있던 터 앞에는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이 직영하는 ‘백운옥판차 이야기’라는 찻집이 있다. 차 문화는 사찰과 그 주변에서 발달해왔다. 이 찻집 역시 앞마당과 울타리 밑에 수국이 가득하고, 한담(閑談)을 부르는 초가 정자가 편안하게 서있다. 이 모습을 월출산이 흐뭇하게 내려다본다.
▶2020년 202주년 사제 의리=이 찻집은 강진의 힐링과 과학의 집약체다. 주인은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7대손 이현정(48) 박사. 이시헌은 월출산 자락 국가 명승 ‘백운동 원림’의 동주(洞主)이기도 했다. 이시헌의 후손이자 이현정의 고조(高祖)인 이한영은 증조부터 자신까지 경기도 정약용 가(家)에 113년간 보내던 차(茶)를 ‘백운옥판차’라는 이름의 건강차 국산 상표로 반포했다.
2020년은 다산이 강진을 떠날 때 사제간 다신계(차를 통한 신의)를 맺은 지 202년 되는 해이다. 학문 성취도에 대한 편지와 시문, 엽차과 떡차를 번들로 보내기로 한 맹약이다. 소포를 받은 다산은 시헌에게 3증3쇄(세번 찌고 말리기)법, 학업에 대한 충고의 답장을 보냈다. 당대의 사제는 이승을 떠났어도 다산과 시헌의 후손는 200년 넘게 ‘백운옥판차(백운동에서 옥판봉을 보며 나누던 차)’ 우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백운동 원림 별서정원은 사제가 운명적 조우를 한 곳이다.
다산의 스승이자 제자이고, 아우이면서 친구, 후견인인 혜장선사(백련사)가 ‘제다(製茶)의 달인’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사를 만든다. 다산은 처음엔 혜장이 월악산 야생 찻잎으로 만든 차를 선물로 받았는데, 나중엔 “요즘 술이 안깬다, 사람을 살리라”는 호소와 “선사님 차가 대박!”이라는 내용의 시 ‘걸명소(乞茗疏)’까지 보내면서 응석하듯 차를 구하고 걸한다. 정약용의 호는 차나무 산(茶山)이다.
응석의 약발이 다할 무렵, 배움을 택한다. 시헌은 제다지침서 ‘동다기’를 베껴써가며 통달해 시사점을 공유했으며, 다산은 대나무 이슬을 맞고 자란 야생 차나무가 더 구수하고 부드럽다는 점 등을 밝혀내고 한의학의 구증구포법을 원용한 새 제다법을 개발한다.
▶백운동의 어린 시헌, 다 계획이 있었구나= 찻집에서 백운동 가는 1.4㎞길은 33만㎡(약 10만평) 드넓은 강진 차밭 사잇길로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 월출산 기암괴석 능선이 호위하고, 푸른 차나무가 사단별로 종대를 이뤄 연쇄적으로 도열하니 장관이다. 군데군데 연대장처럼 어린 찻잎을 냉기와 서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서있는 바람개비(방상팬)가 멋진 소품이 된다. 멀리 남쪽으로 한옥식과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진 마을이 착상해 스위스 농촌 부럽지 않은 풍경을 연출한다.
백운동 입구 구름다리를 건너면, ‘야생’ 차 나무가 동백과 섞여 자라나고, 잠시 후, 백운동의 거대한 녹음 터널이 홍옥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홍옥폭’과 어우러진 별서정원 입구를 만난다. 푸른 빛 바위절벽 ‘창하벽’ 옆 서쪽 문으로 들어서면 자연 옥수가 정원안에 들어왔다 되돌아가 가는 유상구곡이 앞마당을 휘감고, 동쪽 문옆 왕대나무숲 ‘운당원’에서 산들바람이 건듯건듯 불어온다,
1812년 9월, 다산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당시 여덟살이던 시헌은 다 계획이 있었다. 예복을 정제하고, 초등학교 2학년 나이 답지 않게 말투를 고쳐가며 면접보듯, 다산을 대했다. 다산으로선 숨겨진 보석관광지에 놀라움이 더 컸겠지만, 이시헌은 이때 다산의 가장 어린, 그러나 준비된 제자가 되고, 200여년 대대로 이어가는 가장 오랜 제자로 남는다.
이시헌의 증손 이한영은 일제때 우리 차인데 일본 상표가 붙자,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무늬를 넣은 우리 상표 ‘백운옥판차’를 낸 것이다. 이현정 박사는 사라지거나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금릉월산차’를 집요한 연구와 투쟁으로 부활시켰다. 수국의 꽃말처럼, 202년의 진심 담긴 사제지정을 털어놓던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엔 결기가 들어있었다.